부에노스아이레스 해피투게더 (春光乍洩) - 왕가위 감독
왕가위감독의 영화중에서 가장 다시 보고 싶던 영화였다. 극장에서 필름을 통해 봤음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속에서는 알 수 없는 미련같은 것이 남아있던 영화다. 그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
아휘(양조위)와 보영(장국영)이 서로 가지고 있던 미련에 전염되었던 것일까..
그 두 사람의 이야기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탱고씬이라고 했던 그 장면도 아직 더 슬픈 탱고씬이 없었고...^^ 둘이 같이 나오는 화면보다 혼자서 나오는 화면에서 서로의 감정이 더 살아나던 것도 여전했다. - 사랑이란 것이 둘이 하는 것 같지만 결국 혼자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주고 받는 것이 당연한 듯 생각되지만 결국 주는 것도 개인의 문제요, 받는 것도 혼자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것이 혼자의 오해든 상호 이해가 바탕이 되었든 간에 말이다. - 우스개를 조금 섞어 말하자면, 감정을 전달하면서 받은 사람한데 영수증 받는 거 아니지 않나.. 아니면 내가 준 감정이 이런건데 네가 받은 감정은 어떤거야... 하며 묻기도 웃기잖아. 서로 난 줬다고... 난 받았다고...(혹은, 서로 주지 않았고, 받지 않았다고) 우기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아휘와 보영이 각자 서로가 없는 곳에서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도 사랑이란 것의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닌 셈이다. 단지 그림이 평이하지 않다는 것뿐...
그래서 마지막 아휘의 대사가 더욱 마음에 남는다.
전에 볼때는 마지막 대사가 좀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나이를 먹고 보니 유치한 것은 아니더라. 너무 간단해서 웃을 수 있지만, 결국 그것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어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 근래에 보는 소설에서 '나는 너를 보아야한다.'라는 문장 하나를 가지고 이것이 얼마나 간명하게 감정을 담아 쓴 한 줄의 명문인가를 몇 페이지에 걸쳐서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처럼 사람의 마음속 깊이에서 올라오는 감정은 사실 여러 줄의 장황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단 한줄. 단어 하나면 족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단지 주변이 이해하지 못 할까 불안한 마음에 부연의 부연 설명을 하다보니 길어지는 것 뿐이다. '이걸 다 풀어서 말하면, 니가 알아 듣기는 하냐...'하면 간단할 문제를 소심하게 설명하다보니 구차해지는 것인 셈이다.
DVD를 구하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음에도 출시조차되지 않았는지 찾을 수 없었던 영화. 그래서 극장에 다시 걸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예매를 해버렸다는... 영화를 일주일도 전에 예매를 하는 경우는 진짜 없는 데 말이지. 무슨 영화제도 아닌데...
아휘의 마지막대사.
'그를 다시 보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언제든 보게된다고...' - 언젠가는 만나게 될거야.가 아니라 장소가 어디든, 언제든 볼수있다는 것.
아휘가 보영없이 홀로 찾아간 아과수폭포에서도 보영이 옆에 있듯 그를 생각했던 것처럼, 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장소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Together이긴 한데.. 그래서 Happy하기도 한데.. 좀 서글프다. 좀 쓸쓸하다. 그래서 간간이 해피투게더가 무지하게 보고 싶은 때가 있나보다.
갑자기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가 생각난다. '혼자라고 느낄때'라는 노래였는데...(노래 제목은 검색해서 찾았음. 요즘 내가 이런걸 기억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이라고 봐야지. 그리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가사 중에 '혼자있는 시간이란 그대와 함께 있는 것'이라는 부분이 있다. 아휘의 생각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언제든 보게된다는 것, 혼자있는 시간에는 그대를 불러와 이야기를 한다는 것.
예전에 이 노래가사가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설명을 해준적이 있었는 데, 첫 마디가 무섭다(?)였다. 혼자있는 시간이 어떻게 그대와 함께 있는 것이냐며... 정신병이 있는 듯하다며... 쩝.. 그 친구, 밥은 먹고 다니나..^^
해피투게더를 다시 보면서 잊고 있었던 기억이 하나 되살아났다.
세상의 끝이라는 '우슈아'. 그 곳에 있다는 등대.
그곳에 가겠다고 했던 것.
그곳에는 모든 슬픔을 묻을 수 있단다. 아휘의 슬픔도 창(장첸)이 가져가서 묻어주겠다고 했다.
'여기에 너의 슬픔을 녹음해. 세상 끝에 묻어줄께... - 녹음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소리만 들린다. 우는 건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건 함께 있는 것과 마찬가지야..'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볼수있고, 같은 생각을 한다면 함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혼자이어도 Together인 삶. 그래서 행복할 수 있는 삶. - 이쯤이면 된거 잖아.. 그래서 행복하면.. 너무 욕심내지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