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 임순례 감독
시사회를 통해서 영화를 봤으면 본 값을 해야한다고 생각할때가 있다. 이번이 조금은 그런 순간이기도 하다. 본지는 좀 됐는데 올리는 걸 잊고 있다가 이번 주 목요일에 개봉이라고 하니 한마디 거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 영화가 기획되고 있다고 할때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아테네 올림픽뿐만 아니라 내가 봤던 올림픽 관련 게임중에 가장 감동스럽고, 가장 안타까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걸 왜?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편으로 그 게임을 누구도 재생해낼수는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절대 각본없는 드라마를 각본을 가지고 똑같이 만들어낼 수는 없다고..
하지만 임순례감독이라는 소식을 듣고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혹시, 이번에도... 라는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름 초호화 캐스팅 아닌가.. 임순례감독이 이렇게 인지도 있는 배우들을 가지고 영화를 찍었던 적이 있던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번엔 다를지도 몰라...'라는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번엔 다르다는 걸 보여줬다. -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이전에 임감독의 영화가 나빴다는 건 절대 아니다. 임감독의 모든 영화를 스크린으로 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난 다 극장에서 봤다. '세친구'는 개봉하는 날가서 봤고... '와이키키브라더스'도 개봉한 주에 가서 봤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 볼 가능성이 높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항상 아쉬웠던, 안타까웠던 임감독이 '이번에는 제대로 한껀하나보다..' 이게 영화를 본 첫 느낌이었다.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을 봤더라도 혹은 보지 못했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영화로, 영화답게 잘 만들었다는 말이다.
임감독이 전작에서 보여주던 디테일한 인물 묘사도 잘 들어나고 유머도 적절히 섞여 관객의 거리감을 한결 줄여준다. 사회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동일한 인물군을 묘사하면서, 이전 영화들에서는 관객들을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들던 것을 유머로 깔끔하게 녹여버렸다. 물론 거기에는 뛰어난 여배우들의 연기가 한 몫했다. 역시 문소리고, 역시 김정은이고, 역시 김지영이다. 다른 조연들도 인상적이긴 마찬가지.
이전 작품들에 비해 관객과의 거리는 많이 줄였으면서도 임감독은 잃은 게 없다. 보통 흥행에 압박을 느끼는 감독들이 작정하고 되는 영화를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는 거다. 여전히 약자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있고,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도 변하지 않은 듯하고, 어쩌면 어떻게든 원하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순간순간이 임감독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스스로 보여주는 듯하다.
누군가 영화에서는 해피엔딩으로 해주지. 라는 말을 하던데.. 그럼 게임에서 지는 것이면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말인가?
결과는 관계없이 이미 우리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지나고 있다고 말하는 엄태웅의 이야기는 감독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흥행을 하던 하지 않던, 이미 생애 최고의 순간이 지나가고 있다고...
진심으로 영화가 흥행으로도 잘 됐으면 좋겠다.
영화가 재미만 있는 건 아니다. 별 생각없이 갔다가는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사족. 문소리가 이 영화때문에 반려한 시나리오가 많다고 들었다. 자꾸 연기되는 영화 스케줄로 매니저가 한마디 할때, "야.. 이거봐봐. 이 시나리오, 저 시나리오.. 이런 이야기는 언젠가 또 만들 수 있지 않겠니? 근데 10년 안에 이런 영화 또 찍을 수 있을까? 기다릴래.."라고 했다고.. 영락없는 배우다. 진짜 좋은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