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 작가와 내가 만난 첫번째 작품.
일전에 지나가는 길에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친구를 기다리는 길이었지.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약속 장소는 서점이었고... 조금 일찍 약속 장소에 나간 나는 이런 저런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펼쳐보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그때 나의 눈을 사로 잡는 제목이 있었다. '지구영웅전설'...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이 그냥 제목만으로 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하던..
그.러.나.
그게 그와 나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몇장을 보는 동안 도대체 공감할 수 없던 내용들, 문체.. 특히나 그 당시는 -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지만 - 지나치게 가벼운 말투의 소설은 좋아하지 않았다.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혹은 그것이 스스로의 개성을 들어내는 것이라고 느끼는 치기 어린 아이들이 무슨 PC통신에서 사용하던 언어로 글을 쓰는게 유행이었으니까..
물론 그런 영향 때문이었는지, 이제는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용어나 문체가 문학에도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예전의 그런 경박스런 개성표출이 아닌 실용적이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문어체문장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쓰기 시작한 셈이다. (실용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니 꼭 경박스러움과 동의어 같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매우 더럽다.. 어쩌다 실용이란 단어가 이런 감성을 느끼게 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나.. )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나는 변해서 박민규 작가를 다시 만났다. 박민규 작가는 변했는지, 거기에 있었는 지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의 스타일이라면 그도 변해서 여기까지 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서 우리가 만난 지점은 참 적절했고, 좋은 시절을 한때 함께 보냈다. 그의 연재를 함께 한 시간이 꽤 오래였으니 이렇게 말해도 괜찮으리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인터넷으로 보던 그의 소설이 책으로 나왔다. 그렇게 궁금하던 에필로그와 함께...
보는 동안 아픈 마음을 다독이기도 하고, 그리움을 지우기도 하며 봤었는데.. 책으로 이렇게 다시 만나니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갑기만하다.
꼭 책속의 주인공이 나의 오랜 친구였던 것처럼...
다들 아프지만 아름답고 찬란한 시절의 기억을 잘 간직하고 살아가길... 비록 사는 곳이 매우 멀리 떨어져있더라도... 그래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됐을 지라도..
이제 나도 조금씩 정리를 해야할 시절이 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