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0 ('04.2.27~'08.11)/畵 (화)

행복 - 허진호 감독 (2007.10.05)

에메랄드파도 2009. 1. 3. 23:29

 
행복 - 허진호 감독

변치 않겠다는 새빨간 거짓말!

포스터 카피를 만든 사람이 참.. 싫은 순간이었다. 허진호 감독의 이전 영화들을 보고도 저런 카피를 메인으로 쓰고 싶었을까. 뭐, 그것도 장사 되라고 넣은 거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다만...


순간순간 떠오르는 기억의 단편들...

박인환(허진호감독의 영화에 나름 단골 배우다)이  그런 대사를 한다.
"내가 담배를 24년 피웠다. 내가 담배를 왜 피우는 지 알아? (극중 박인환은 폐암이다.) 내가 담배를 피워서 후회도 많이 했거든..   ....   근데.. 후회 안 하려고 펴..  ....   뭔 말인지 모르겠지?"
뭔말인지 모를 사람 많을 만한 대사다. 그런데 영화가 중반으로 넘어가기 전까지도 난 이 대사에 멍해져서 되뇌고 되뇌고 했다.

후회도 많이 했는데... 후회 안하려고 더 모질게, 더 나쁘게 굴었다고 하면 좀 이해가 쉬울까.

물론 시간이 지나고 나니 참 무의미한 짓이었다고, 바보같은 짓이었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그나마 담담하게 말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얼마나 긴 거리를 돌아왔는지는 누가 짐작을 할 수 있으려나..

항상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한다고, 항상 똑같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허진호 감독은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한다. 조금씩 나이를 먹어간다. 비슷한듯, 같은 듯 하지만 참 다른 이야기를 한다. 물론 사랑이야기가 거기서 거기지..라고 말하면 그런 차이까지 설명해주고 설득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모르면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말이다.

참, 지긋지긋하게 사랑타령을 한다... 에이~~ 내 다시는 안 볼란다... 하다가도 허 감독의 새로운 영화가 나온다고 하면 개봉하는 날 가서 본다. 참, 지긋지긋한데... 정말 지긋지긋한데... 한동안 보지 않으면 또 가서본다.

참, 지긋지긋한데... 그렇다고 또 다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는게 사랑이기도 하니...


이번에 허 감독의 영화를 보며 새삼 종교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바꿔 이야기하자면 '숭고'하다고 해야할까.. 주인공들이 마음의 변화가 있는 경우, 자신에게 다가온 현실을 받아드리게 되는 경우에는 번번이 그들은 자연속에 있다. 자연속에 있는게 종교적이냐? 그게 숭고한거냐? 라고 물어보면 참 말이 길어지는데...
흠.. 뭐, 숭고한 무엇. 범접할 수 없는 무엇에서 신이라는 것을 접하기 마련이다. 인간으로 알 수 없는, 짐작할 수 없는 무엇을 대면했을때.. 그 순간이 신이란 것이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그것은 거대한 자연의 일부로 초라하게 서있는 자신을 깨닫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예로 인간이 도저히 알 수 없는 자연현상, 천재지변, 운명, 우연등을 설명하기 위해 신을 들먹였던 것 아니었나...

어찌되었든, 허 감독의 주인공들은 사랑을 떠나보내고, 사랑을 시작하고, 운명을 느끼는 순간에는 자연속에 있다. 지나가는 바람에,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자신의 감정이 변해감을 깨닫고 그것이 스스로 거절할 수 있는 유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마치 머리결을 스치는 바람을 내가 막는 다고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번에도 황정민이 너무나 인상적인 표정으로 바람을 맞는 장면이 있다. 꼭 예전의 유지태가 그녀를 떠나보내고도 웃음 지을 수 있게 만들었던 그 바람처럼...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시작하면 인생을 알아가기 시작한거라고... 물론 겉멋이다. 에스프레소 마시면 인생을 알아가는 거라면 인생.. 그거 참 알기 쉽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다크 초콜릿의 맛을 알기 시작하면 진짜 사랑을 알기 시작한거라고.. 이것 역시 겉멋이다. 사랑을 그렇게 쉽게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그런데 어찌되었든, 이제는 초콜릿도 씁쓸한 것을 좋아하고, 커피도 무척 독하게 마신다. 하지만 아직도 난 아무것도 잘 모르겠단 말이다. 난 아직도 비행기가 날아가면 마음이 들뜬단 말이다. 난 여전히 ....


결론은... 사랑은 말이다.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유지하자고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헤어지겠다고 헤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사실은 이 시간차라는 것이 아주 사람들을 돌게 만든다.) 그것조차도 인간이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의지로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 좀처럼 하지 않는 말인데... 사랑은 그런거 같다. 분명 그런거 같다.

말이 참 많았다. 아마도 '행복'이 좋았나보다. 하지만 여전히 허 감독의 영화중에는 '8월의 크리스마스'가 가장 좋다. 청년 허진호의 사랑이 아무래도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이루어지던 그렇지 않던간에... 아니면, 점점 그의 영화가 지긋지긋하고 지저분하고 짜증나는 현실에 가까워지는 꼴이 싫은 것일지도.. ㅋㅋㅋ  현실이 지저분한 것을 괜히 허 감독한테 투정이네. 그걸 어쩌라고...


영화가 끝나고 가장 궁금한 점.
황정민이 그 이후 어떻게 살았을까? 아니다. 공효진은 그 이후 어떻게 살았을까... 그것이 내가 가장 궁금한 점이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상상을 했다. 그녀는 이렇게 살고 있을 까? 아니면.. 저렇게...

그녀는 어떻게 살고 있을 까? 그녀의 그 이후의 삶이 궁금한 사람이 또 있을까? 있으면 정신병이다. ㅋㅋ 주인공도 아닌데... 잊어라.. 잊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