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0 ('04.2.27~'08.11)/畵 (화)

2046 - 왕가위감독 (2004.12.11)

에메랄드파도 2009. 1. 3. 22:27

2046 - 왕가위 감독

영화를 본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유난히 비가 오는 장면이 많았던 2046. 내가 이 영화를 본날도 꼭 그렇게 비가 오는 날이었다. 영화를 보고 비를 맞으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를 맴돌던 분위기.. 그것을 좀 털어낸 후에나 이걸 쓸수있겠다 했는데..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네..

언젠가 어딘가에서 말한적이 있었던.. 언제나 여기가 BEST인거같아..라고 생각했는데 매번 그걸 갱신하는.. 마치 더 빨리 달리는 선수는 없을거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더 빠르게 달리는 선수가 나타나듯.. 왕가위감독의 영화는 볼때마다 "이게 왕가위감독의 작품중에 최고네.."하며 극장을 나오게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꼭 왕가위감독의 영화에서만 등장을 하는것은 아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 경우에는 비일비재하게 생기는 일이다.

한 사람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불안한, 그래서 하루하루 오늘 이 사람을 사랑하는게 최고점이 아닐까하는 걱정이 우선할때.. 그럼에도불구하고 오히려 그 다음날 그 사람을 이전보다 더 사랑하게 되는 불가사의한 일들. 혹은 그 역으로 내일은 좋아지겠지 하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더 엉망이되고.. 모레는 그 전날보다 더.. 이런 재수없는 경우들.

왕가위감독 영화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캐릭터도 내일 그가 어디에 있을 것을 예상할 수 없다. 중경삼림의 왕비도, 타락천사의 여명도, 금성무도, 해피투게더의 두 주인공도.. 설사 머물 집이있다고 해도 현실에서 혹은, 정서적으로 모두 이방인인 셈이다. 

이런 불안함, 예측 불가능함이 캐릭터의 행동에 집중하게 만든다. 하지만 집중한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을 예측한다거나 하는 것은 처음부터 포기하는 편이 좋다. 오히려 이성적으로는 더욱 예측할 수 없는, 그러나 심정적으로는 공감하고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캐릭터들이 되어간다. 그것조차 한편의 영화에서 여러차례 순환되는 이야기가 적어도 한차례는 순환이 되어야 깨닫기 시작한다. 공감하기 시작한다.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못 하다면 끝날때까지도 공감 못한다. ㅋㅋ)

조금씩 공감대를 형성하며 불안함을 힘(원동력)으로, 극한(혹은, 최고치)으로 극한으로 스스로를 몰고가던 캐릭터들이 불현듯 제자리에 서서 묻는다. "너.. 더 가보고 싶어? 영원히.. 끝까지.. 아니야.. 그건 어짜피 불가능한 걸~~ 왜냐하면..."
이 왜냐하면이 되는 부분이 나오면 그때부터 보는 사람을 죽이기 시작한다. 뒤통수를 친다거나, 염장을 지른다거나, 허를 찌른다거나, 취조끝에 나의 자백을 받아내거나..



이번 영화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사랑하긴 한거니~ 스타일의 비관. 잃어버린 과거의 사랑을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가면 뭐해.. 거기 사랑이 있겠어..라는 비관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불가능한 미션이란거지.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 중 한 대사처럼 야~~ 사람한테 바랄 수 없는거 바라지마라~~ - 사실 이건 별로 안 무섭다. 이런 건 자백이 필요한 경우니까..

이런 불가능을 아는 주인공 주변에 매우 현실적인 듯 하지만 아직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이 등장을 하고 이들은 조금 위험하게 말한다. 이쪽에는 길이 있다고, 당신은 전에 길이 없는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지금 그런 것 뿐이라고.. 이쪽으로는 길이 분명히 있다고.. - 이게 매우 무서운 케이스다. 다시 홍감독의 대사를 빌리면 우리 사람되기는 이미 틀렸지만, 괴물은 되지말자. 하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몸짓을 보다 보면 이미 괴물의 형상을 한 내 자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주변인들의 모습에 공감하고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원.. 이런 것에 대해..
하지만 주변인이 다시 주인공이 되고 그 주변에 또다른 누군가가 여기 길이 있다고 외친다. 오랜시간이 지나지 않아 길을 찾기란 불가능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 불가능을 확인하는 것 일수도 있고, 그 속의 일말의 희망을 마지막으로 찾아보기. 그게 왕가위가 제안하는 시간을 왜곡해 분석해보기 인셈...

순간순간(정확하게는 스틸컷)을 붙잡아 그 기억으로 영원히 지속될수있는 사랑에 대한 가능성을 찾아보자..가 그 이전의 작품들이었다면, 화양연화부터는(이번 2046에서는 훨씬 훌륭했음.) 순간을 잡아낼때 발생하는 오류에서 벗어나 집중력을 가지고 섬세한 관찰을 통해 놓치는 것들을 잡아보자...인 듯하다. 

다시 말하자면, 전작들은 저속촬영후 스텝프린팅을 하는 것을 통해 긴 시간속에서 순간을 기억해내는 사람들의 정서에 기대어 진실에 가까이 가기를 하는 셈이고, 근작들은 고속촬영을 통한 주인공들의 미세한 움직임을 바라보는 것은 시간을 좀더 세밀하게 쪼개고 관찰하여 숨겨진 진실을 발견해보자는 쪽에 가까운 듯 생각된다. 또한, 이건 순간을 선택하는 것이 작가의 몫이냐, 관객의 몫이라는 차이가 있다. 어짜피 순간의 현상이나 기억만이 영원할 수 있는거라면 말이다.





아.. 이거 더 길게 써야지 아무도 안 볼텐데.. 시간이 없네..
띄어쓰기를 하지 말까?